간증문 작성자 | 오클라호마 털사 태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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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주일학교, 중등부, 고등부,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을 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수를 하면서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술과 담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교회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술 좋아하는 친구들과 폭음을 하면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의 황금기를 탕진했습니다. 세상 쾌락을 쫓으며 서서히 나락 끝으로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쾌락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더 깊은 수렁 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기도 했으며 어렵게 시작한 식당도 한창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IMF의 세찬 파도 앞에 비명한번 못 지르고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99년 4월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통해서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저는 비행기 안에서 알량한 자존심과 함께 백해무익한 담배를 끊었습니다. 절치부심의 각오로 미국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겨울에도 땀이 줄줄 흐르는 세탁공장에서 10시간 바지 다리는 일을 해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 믿었고, 고진감래의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희망의 시간이 찾아오리라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얘기치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습니다. 체류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 년에 오천 불이라는 큰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불법 체류에 오명을 쓸 수밖에 없었고 술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상심의 마음을 달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아침이 되면 세탁공장에 나가 바지프레스를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001년 7월 100도가 넘는 불별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달라스로 이사했습니다. 대부분의 한인들처럼 저 역시도 도너스 가게에서 헬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육 개월 후 정식 베이커가 되었고, 같은 교회 집사님 소유의 가게에서 만 4년 도너스를 만들었습니다.
달라스에 오고 나서 다시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도너스 만들고 오후 2시 교회를 가면 어찌나 졸음이 쏟아지는지 목사님 설교가 자장가처럼 귓가에 쟁쟁했습니다. 더구나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미혼인 저는 청년 부에도 장년 부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어정쩡한 위치가 되었습니다. 원래 내성적이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라서 이런 것마저도 심한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격주로 출석했고, 급기야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얼굴만 내밀었습니다.
하나님, 십자가, 보혈, 믿음. 이러한 단어들이 제게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타인의 전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집과 가게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특별히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마켓에 가는 것 되에는 외출도 거의 없었습니다. 너무 무료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보았는데 많을 때는 일주일에 20개까지 본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음란비디오를 접하게되었고, 맥주 마시면서 비디오 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음란비디오를 탐닉할수록 제 영혼은 날로 황폐해졌고, 점점 썩어 문드러지는 시궁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생존의 유일한 무기라는 생각에서 매일 아침 집에 오면 5마일씩 조깅을 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 불고 눈발이 내려도 무조건 달렸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2007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오클라호마 털사로 이사해 현재의 도너스 가게를 오픈 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하는 비즈니스라 열성적으로 일했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힘이 솟았습니다. 그런데 2008년 4월초 심방 오셨던 목사님께서 얼굴빛이 검다고 걱정하셨습니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는 검은 기운이 감돌았고, 두 눈에는 황달기가 비쳤습니다. 순간 3월 들어서 유난히 피곤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소소한 일에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갑자기 화가 치밀었으며, 잦은 짜증에 아내와 마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간에 이상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변은 탁한 색깔로 변했으며 대변에는 비늘 같은 허연 기름기가 여기저기 발견되었습니다. 도너스를 만들고 나면 너무 기진맥진해서 빗질도 할 수 없었고 의자에 앉자마자 코를 골며 잠들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Muskokee에 한국의사가 있다고 해서 피검사를 했는데, 다음날 아내를 통해서 간수치수가 심각하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인근 큰 병원에서 피검사, CT촬영, MRI, 조직검사까지 마친 후 미국 의사는 제가 간 경화이며 3개월 밖에 못산다는 청천 벽력같은 사형선고를 무덤덤히 내렸습니다. 순간 아내는 오열하며 통곡했지만 정작 저는 실감이 나질 안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5일 동안 두 팔뚝은 무수한 주사바늘로 난자 당했지만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저주스러운 죽음의 병이 찾아왔는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목사님과 많은 교회식구들이 쾌유하라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퇴원 후 새벽기도에 나가서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또 애원했습니다.
“하나님, 절 살려주세요.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4월 24일
하나님께서 저의 생사를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인 의 권고로 킬린의 임마누엘 기도원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8시간의 초행길이었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았고, 킬린 이라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도원 성전 한쪽 구석에서 무릎 꿇고 울었습니다. 줄줄 눈물을 쏟으며 난생 처음으로 제 마음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무조건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목이 터져라 허리가 끊어져라 마구마구 소리 질렀습니다. 일주일 내내 울고 소리 질렀습니다. 무릎 꿇은 방석위로 침과 콧물로 흥건히 뒤범벅이 되었고, 목소리는 완전히 쉬어서 쇳소리만 흘러나왔습니다. 기도원에 올라 온지 일주일째 되던 저녁예배를 평생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날도 역시 소리 지르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안수기도를 하시던 목사님께서 방언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혀는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돌돌 말려들었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비한 말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목사님의 오른손을 통해서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오면서 하나님의 고요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병이 나았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잔잔히 말씀하셨지만, 은혜의 생명의 말씀이 폐부 깊숙이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제 몸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던 검디검은 얼굴은 차츰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복수 때문에 한껏 가늘어진 오줌발이 거세졌으며, 대변에서도 기름기가 어느덧 자취를 쏙 감추었습니다. 늙은 호박처럼 누리끼리한 두 눈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맑고 투명해졌습니다.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은 날아갈 듯 가뿐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어둡고 침울했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평강이 임하니 병마와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리라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도원에 올라온 천지 사방에 일거리가 쌓였고 여기저기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때마침 기도굴 작업이 한창이라 저도 기도원에 올라온 다음날부터 합류했습니다. 처음에는 아트막한 동산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고 조그만 돌무더기에도 휘청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삽, 곡괭이 등의 작업용구를 가지러 창고에 내려갔다 올라오면 벌써부터 등짝에는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흘렀습니다. 그쯤 되면 두 다리가 땅속 깊숙이 박힌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땅파기, 목수도우미, 큰 돌 나르기, 실 내벽 바르기, 사방공사, 작은 돌 골라 버리기, 주위 환경 미화 등등, 한 달이 지나자 두 개의 기도굴이 완성되었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거의 탈진이 될 정도로 오전 세 시간 오후 세 시간씩 일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면 병을 고쳐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 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10장 19절 말씀을 주시면서 작업 틈틈이 암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삽질 한번 곡괭이질 한번 할 때마다 성경말씀을 중얼거리며 암송했습니다.
“내가 혁호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혁호를 해 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암송하고 또 암송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때부터 매일아침 작업 나가기 전 성경 한 구절씩 종이에 적어서 암송했습니다. 암송하는 불량이 늘어남에 따라 제 몸은 몰라보게 달라졌고 기도원 식구들은 얼굴색깔이 희게 변하는 것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골백번 거울을 보곤 했는데, 어느 순간 본래의 혈색을 발견하고는 거울보기를 중단했습니다. 기도굴 작업이 종료되고 야산 전지 작업을 했는데 하루 종일 톱질하고 나무 자르고 물 마시러 오르내려도, 옷을 비틀면 후두둑 떨어질 만큼 땀을 흘렸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연이어 취사장 작업을 하게 되었고 기초공사, 외벽페인트, 내부 방열까지 마치니 어느덧 하나님께서 명하신 3개월이 다가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제게 간 경화를 허락하셨을까요? 세상 쾌락에 흠뻑 빠져 살았고 음란과 교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안타까움과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IMF직후 미국의 비자 거부 율이 사상 최악이었을 때 자격 요건이 미비한 제게 미국비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단 꿀을 몰래 마시다가 원수마귀의 벌통아래 갈기갈기 찢겨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전에 저를 예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의 생명을 취하시기 전에 생명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돌짝 밭처럼 강퍅해진 제게 일반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시고, 간 경화라는 극단적인 충격요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납작 엎드려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간절히 드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9)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니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 이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요한 11:4)
하나님께서는 간 경화의 완치를 통해서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혁호의 간 경화는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께서는 죽어 가는 저를 살려주셨고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앞으로서의 제 인생은 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덤으로 주신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은 단순히 간 경화의 치유에만 국화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요한 3:2)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간 경화의 치유가 아니라 제 영혼의 구원입니다. 아직도 음란과 교만한 오래된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영혼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는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허락하셨고, 그 보너스로 간 경화의 치유라는 축복도 함께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조금의 후유증도 없이 치료하시는 최고의 명의 시니 강철같이 튼튼한 강으로 새롭게 하심을 믿습니다. 세상의 현대의학은 저를 외면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떠나지도 저를 버리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제가 생사의 기로에서 두려워할 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저와 함께 하십니다. 당연히 주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건져 주시고 감격스러운 간증의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Glory to the Lord who saved me from death
Introduction
I am 42 years old and my name is Tae Hyuk-Ho (태혁호). I am currently running a donut shop at Tulsa, Oklahoma and was unexpectedly notified that I had a liver cirrhosis mid-April this year when my doctor notified me that I will only have the next three months to live. I really wanted to live so I earnestly asked God to save me. God saw my tears and gave overflowing love and grace to me who was wailing and mourning.
Now, I want to write and share my testimony to give glory to God who saved me when I was nothing more than a person whose only fate was to succumb to death.
Glory to God who saved me from death. (1)
I went to church when I was young until my high school years. I even served as a president for peers at Sunday school when I got older. However, by the time I took a year off after high school graduation to prepare myself to take the college entrance exam, I started to invest more and more of my time in drinking and smoking and eventually stopped going to church. I wasted the golden time of my life that I will never get back by drinking heavily with friends who also enjoyed drinking. I gradually fell into the bottomless pit of life by pursuing worldly pleasures. The more I tried to escape from it, the more I fell deeper and deeper into it. Meanwhile, I got various jobs to survive and eventually started a restaurant that was considerably successful. However, unable to overcome the Korean Financial Crisis in 1997, I failed completely and hopelessly.
In April of 1999, I arrived at the Chicago O’Hare International Airport to start my life in America. In the airplane, I eliminated my habit of smoking and my petty pride. I started my American life with a strong determination. I did not notice any pain from working at a laundry plant where people sweat even during mid-winter. At that plant, I ironed solely pants ten hours a day. I consoled myself with the mere belief that since America was considered a land of opportunity, a hope for me would appear after all the hardships I faced at that moment.
However, I faced an unexpected obstacle. To stay in America as a lawful resident, I had to pay $5,000 annually. Because at the time it was beyond my ability to pay that much, I chose to stay as an unlawful resident- a fact that I am embarrassed to admit. I continued to drink alcohol but nothing could comfort my heart. Regardless, I continued to work at the laundry plant every morning and pressed pants day after day. There was no other choice if I wanted to survive.
I remember that in July 2001, Dallas, TX had a temperature that was higher than 100°F. I moved to Dallas and got trained as a helper at a donut shop like most other Koreans did. After six months, I became a professional donut baker. I made donuts for four years at a donut shop owned by a deacon of the church I attended.
Once I moved to Dallas, I started to attend church again. However, the afternoon sermon that was at 2:00 PM was like a lullaby after making donuts in that same day's early morning. I was in my mid-thirties at the time, yet I was still unmarried. Because of that, my affiliation at church was ambiguous. Because of my sensitive and introspective nature, that ambiguity developed into a heavy stress. I made excuses to attend church less and less- at first, biweekly, then soon after, monthly.
“God,” “the cross,” “Blood of the Lord,” “faith.”
These words were exotic to me. They seemed like words I would never experience in my lifetime.
The only routine thing in my life was going back and forth from my house to the donut shop every day. I did not have special acquaintances to meet. The only place I went beside my house and the shop was the weekly visit to the Korean supermarket. My life was dull. I rented videos to watch. At my peak, I would watch up to 20 videos a week. Coincidentally, one day, I encountered pornographic videos. I made it a habit to watching videos while drinking beer. As I indulged in pornographic videos, I felt abandoned, wrecked, and ruined. However, I thought that my only strength was being alive, so I jogged five miles every morning regardless of the weather. This was the only time I ever felt that I was truly alive.
Glory to God who saved me from death. (2)
In 2007, I met a woman, loved her, married her, moved back to Tulsa, Oklahoma, and opened my own donut shop that I am still running to this day. This was my first business in the States so I worked very hard to make it a success. Because I believed that this was the opportunity I had sought my entire life, I poured my entire soul and strength into it. However, sometime in early April of 2008, a Pastor who visited me worried for me, saying that my face was dark in color. Upon looking at myself in the mirror, I saw that my face was dark and my eyes were yellow as if I had jaundice. Suddenly, I noticed that I had been especially tired since March. My nerves were on edge, I got mad abruptly, and I was very irritable which frequently caused quarrels/arguments with my wife. However, I could have never imagined that my liver had been the problem. I only thought those symptoms were temporary. Unfortunately, it was not. My tiredness got worse. My urine started to appear murky and my stool contained oily, white features that resembled scales. I did not even have the strength to brush my hair at the end of the day since I was utterly exhausted. I fell asleep deeply as soon as I sat on a chair. Following these symptoms, I could not do sit around and do nothing about it any longer. Since there was a Korean doctor at Muskogee, I went and got a blood test there. The next day, the doctor told my wife that my liver somatic index result was severe and suggested that I go to a bigger hospital. Following that advice, I went to a bigger hospital. Following a blood test, CT, and an MRI, the doctor calmly told me that I had liver cirrhosis and that I had, at maximum, three months left to live.
Upon hearing the news, my wife crumbled. I, on the other hand, didn’t feel the reality of the doctor’s statement. It just seemed so surreal and I could not believe it. For the five days I was hospitlaized, my arm was stabbed countless times by injectionneedles. I could not admit to myself that I had liver cirrhosis, something I knew to be a deadly disease. How much sin had I committed to be subjected to this dreadful disease?
Thankfully, the Pastor and many other people from my church prayed for my wellness. After I left the hospital, I went to morning service and knelt before the Lord with tears. I prayed to God to save me from death.
"God, please save me. Please do not desert me."
24th of April that year
I was determined to let God to decide whether I would die or survive. At the urging of an acquaintance, I left for Immanuel Prayer House in Killeen, Texas. Although this was my first trip in a long time and took eight hours, it felt strangely familiar. When I saw the sign reading "Killeen," I suddenly broke into tears.
I knelt and cried at a corner in the sanctuary of the Prayer House. I shed tears, an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prayed with my with my heart wide open.
"God, save me. Please save me just once."
I clung to life. I yelled and wailed until my throat felt like it would explode and my diaphragm would break. I did that for the entire week. The cushion I sat on was constantly wet from my saliva and tears, and my voice by the end of that week was gone completely.
I could never forget the afternoon service on the 7th day I arrived at the Prayer House. As always, I prayed and shouted during the prayer time of the service. Pastor Chon suggested that I speak in tongue (what is considered a Biblical language used in prayer) while she was laid her hand on me in prayer. The moment her hand touched my head, my tongue suddenly turned and I spoke a mysterious language that I have never neither heard or imagined. More surprisingly, through her hand, I felt an overwhelmingly strong warmth and God's calm voice told me, "Your illness is gone."
Although the voice was calm as the water of a brook, it was in that moment that the graceful living word was carved into my heart.
"Thank you Lord, thank you for saving me."
From that day on, my body changed. The deadly-colored face I once had recovered liveliness little by little. Urination became steadier, and my jaundiced eyes transformed into what seemed the eyes of a child. Sluggishness that I had felt disappeared and instead I felt as if I could fly. Above all, the part of life that was dedicated on my worrying, dark, and depressed soul, I became confident that I would be able to fight my illness and win over to survive.
Glory to God who saved me from death. (3)
When I arrived at the Prayer House, there was construction that needed to be done everywhere. At that time, since the prayer caves in the Prayer House were under construction, I dedicated myself to work the very next day after my arrival. The first time, it was hard to go up the small hill. I stumbled on mere little rocks on the ground. Every time I went down to the storage to get a shovel or pickax and walk back up the hill, my back broke out in a cold sweat. Then I could not even move as if my legs had been planted on the ground.
I dug the ground, helped Elder Yang cut wood, moved large rocks, welded, worked on erosion control, picked up little rocks, and labored to beautify the Prayer House. About a month later, two prayer caves were full constructed. I worked three hours each in the morning and afternoon until I was almost exhausted and burnt out. I believed that if I worked hard and made God happy, then God would save me.
"I have given you authority to trample on snakes and scorpions and to overcome all the power of the enemy; nothing will harm you."
When Pastor Chon gave me this verse, Luke 10:19, she also suggested me to proclaim this word in my spare moments while working. After every move I made, I proclaimed the word out loud by substituting my name and illness into the verse in order to apply it to me personally.
"I have given Hyuk-Ho authority to trample on liver cirrhosis and to overcome all the power of the enemy; nothing will harm Hyuk-Ho."
The more I proclaimed, the more comfortable I became. From that day on, every morning, I wrote down a verse from the bible to proclaim for that day. As the span of bible verses that I proclaimed expanded, my body also changed day by day. People from the Prayer House could not hide their surprise in seeing for their own eyes the changes in my face- it had become much livelier and brighter! In the beginning, I looked at the mirror more than a hundred times per day from excitement, but after I recovered my natural blend and brightness of skin, I stopped checking myself.
After the prayer cave construction, we started pruning on the mountains behind the Prayer House. Although I sawed, cut trees, walked around to get water, and sweat until my shirt was soaked, I was not tired at all. After the completion of pruning, we worked on the communal kitchen. By the time we had laid the foundation, painted the walls, and finished the heating system, I had finished the three months of stay at the Prayer House according to God’s will.
Why did God allow me to have liver cirrhosis?
I was immersed in worldly pleasure and did not know that arrogance and obscenity were sins that lead to death. However, the Lord, who loves me, has wept for me with distress and bitter grief. When it was almost impossible to receive a Visa from America after the Korean Financial Crisis, Lord turned my life around and allowed me to get my Visa. However, I had become miserable while consuming worldly honey and reaped in front of Satan's hive. I was directed by Satan to become a sinner. Since the wage for sin is death, I had gotten to the point where I faced my consequence.
God, who has prepared me before the creation of Earth, gave me the chance to save my life before it was taken up. Since God knew that my heart was as dry as the desert and could not be cured with general solutions, the Lord took drastic measures via liver cirrhosis which proved to be very intensive and effective.
I knelt and cried to God to forgive all the sins that I had committed in my lifetime.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 (1 John 1:9)
Romans 8:1 tells us that there is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When Lazarus, a man who Jesus loved, was deadly ill, Jesus said, “This sickness will not end in death. No, it is for God’s glory so that God’s Son may be glorified through it.” (John 11:4)
God wanted to be glorified from my survival from liver cirrhosis.
Hyuk-Ho's liver cirrhosis will not end in death. No, it is for God’s glory so that God’s Son may be glorified through it.
God saved me from death and allowed me to glorify Him. My life from now on is not mine; I am now living what can be regarded as a bonus life the Lord has given me for His use. This profound and mysterious act of salvation was not simply for the cure of a sickness.
Dear friend, I pray that you may enjoy good health and that all may go well with you, even as your soul is getting along well. (3 John 2)
The ultimate goal of God was not to heal me but to save my soul. God wanted me to get rid of my old self who could not be estranged from arrogance and obscenity. God wanted me to change into one who obeys God's word.
When I leaned on God's word and obeyed with faith, God showed mercy on me and has allowed me to walk with the Lord every second. As a bonus, he has even saved me from liver cirrhosis. Since God is a great doctor that heals with no side effects, I believe that I became as healthy as a man of steel.
The hospital of this world had turned its back on me, condemning me to death, but God has neither turned away nor deserted me. When I was facing death in fear, God consoled me by letting me know that He is with me. God is with me. Without a doubt, He is with me.
At last, I give glory to God who has saved me from the everlasting fire of hell to testify with effervescence.
번호 | 제목 | 간증문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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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흐문 욱 형제 간증 | 흐문 욱 |
69 | 회개토록 하시고 영적인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 (일기형식) | 달라스 온희 월레스 |
68 | 허리통증 (Back pain) | 맥알렌 이재하 집사 (Deaconess Jae-Ha Lee from McAllen, TX) |
67 | 하나님은 두 번이나 저의 불치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 이정미 전도사 |
66 | 하나님께 초점을 더 맞추어 | 강주현 |
65 |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기를 원했더니… (When I wanted to associate with God deeply…) | 휴스턴 김송현 성도 (Song-Hyun Kim from Houston) |
64 | 하나님 앞에 머무른 3개월의 축복(JENS FASTING) | 옌스 (Jens) |
63 | 평안한 마음 (Peaceful Mind) | 달라스 김명자 집사 (Deaconess Myung-Ja Kim from Dallas, TX) |
62 | 토니 전도사 간증문 | 이동선 전도사님 |
61 | 짧은 광야를 통한 주님의 은혜 | 김태동 |
» | 죽었던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 영광 (한글/영어) | 오클라호마 털사 태혁호 |
59 | 죽었던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 영광 (Glory to the Lord who saved me from death) | 오클라호마 털사 태혁호 (Tae Hyuk-Ho) |
58 | 주님, 어떻게 할까요? (Lord, what should I do?) | 임마누엘 기도원 전 정숙 목사 |
57 |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 홍모세 |
56 | 정경주 집사 간증문 | 휴스턴 텍사스 정경주 집사 |
55 | 저의 평생에 가장 긴 저를 위한 휴가 | 윤청 전도사 |
54 | 저는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기적이 일어나는걸 믿습니다. | 이삭 소강 |
53 | 임마누엘 기도원을 다녀가며 | 신수희 집사 |
52 |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훈련받고 변화된 나의 삶 | 킬린 정영아 |
51 | 일주일 금식을 허락하신 하나님 | 박재완 성도 |